일제 강제동원 피해 기구 사리질 위기 일본은 중국노동자들에 사과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조사하는 우리나라의 정부기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미군 전쟁포로들에게 공식 사과한데 이어 중국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도 사죄와 피해 보상금을 주기로 하고 한국에 대한 사과는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26일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올해 말 활동을 종료한다.
지원위원회의 설치 근거인 특별법이 위원회의 존속 기간을 2015년 12월 말까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절박해진 유족들과 뜻 있는 이들이 모여 전시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관련 기구의 상설화를 주장하고 있다.
지원위원회 활동이 끝나면 관련 자료는 행정자치부로 넘어가지만, 행자부는 전문성이 없어 일본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발굴 등 주요 업무가 사실상 끝나는 셈이다. 행자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등을 설립해 지원위원회 업무 일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기존 지원위원회는 국가기관인 반면 재단은 민간단체여서, 강제동원 피해 여부를 공식 인정할 권한이 있는 기구로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구나 이 재단은 설립절차 등이 문제되어 지난 2월 서울 행정법원에서 설립허가 무효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아태평화교류협회와 ‘일제강점하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희생자 한국유족회’(사할린유족회)가 5월부터 위원회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희생자 피해조사와 진상규명, 유골 봉환 등을 위해서는 10여년간 이 일을 전담한 위원회의 존속이 절실하며, 위로금 신청 등도 기한을 정할 것이 아니라 상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1만여명이 서명했으며, 3만명 정도의 서명이 모이면 국회와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신윤순 사할린유족회 회장은 “위원회는 아직 있지만 위로금을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은 지난해 6월로 끝나, 어렵사리 사할린에서 영주귀국을 선택한 피해자나 유족들은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정치권의 관심을 환기하고자, 다음 달 17∼19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봉환과 사할린 강제동원 관련 사진자료 등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연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이 위원회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해 올해 3월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채 방치된 실정이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은 “지원위원회가 사라지는 연말 전에 법안을 개정해야 해 시간이 없다”며 “전시회 후 9∼10월부터는 관련 집회를 열고, 정부에 탄원서도 제출하는 등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미국와 중국 강제노역자들에게는 사죄와 보상을 약속하면서, 한국인 징용 피해자에 대해서는 “법적인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계열사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현재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와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 소송 중이라는 점을 의식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한국은 피해자 규모가 중국보다 훨씬 크고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쓰비시와 같은 민간 기업이 먼저 해결에 나서기를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지원위원회마저 활동을 종료하며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